가족의 대화를 가로막는 내적 요인으로는 가치관의 차이, 세대 차이, 부정적인 감정, 부정적인 자아상, 비현실적인 기대, 그리고 대화 기술의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나의 경우 역시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 이 녀석과 얘기를 하다 보면, 뒤끝이 꼭 좋지 않았다.
내 딴에는 아버지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경청한다고 하는데도 결과는 늘 기대 이하였다.
'밖에서는 대화법 강의까지 하는 사람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걸까?'하는 자괴가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에게 문제가 있었다.
아들이 자기주장을 하다 언성이 높아지거나 공손치 못한 태도를 보일 때면 여지없이 "이 버릇없는 녀석이..."하며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들에겐 허심탄회한 대화가 아니라 훈계나 설교, 평가나 충고의 시간일 뿐이었고, 그래서 좋은 결말을 맺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대화는 좋은 말로 상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의견을 구하고 들으며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또 결혼 생활이나 배우자에 대한 기대 수준도 적절히 조정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얘기를 안 해도 알아서 해줘야 한다. 남편 말이라면 일단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는 등의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으면 대화가 매끄럽게 풀릴 리 없다.
특히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생각에 배결 설명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부부의 대화는 일심동체보다 동상이몽일 때가 많다. 오죽하면 남자와 여자의 대화 방식이 화성인과 금성인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말하겠는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남녀가 함께 부부로 살아가려면 평생토록 끊임없이 맞추고 조정해도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상대방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도사리고 있을 때는 그 어떤 대화의 기술도 소용이 없다. 외도로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남편이 부드러운 말로 칭찬을 하고 선물 공세를 편다 한들 아내가 쉽게 마음을 열 수 있겠는가.
아내의 마음속에는 오히려 '그 X에게도 이런 식으로 작업을 걸었겠지'하는 미움과 원망이 싹틀 뿐이다.
또 반대로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 역시 대화의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
'내가 돈을 못 벌어온다고 남편을 우습게 보는 거겠지' 또는 '우리 친정이 못산다고 나까지 무시하는 거야?'등의 자격지심에서 나오는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사소한 것에도 오해를 하고 화를 내기 때문에 진솔한 대화가 어려워진다.
대화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부 사이와 부모 자식 간에 친밀감을 쌓는 것이다.
뺨을 한 대 올려 부쳤더니 아이가 씩씩거리면서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면 자녀와 대화를 재개하기가 참 난감할 것이다.
이런 냉전은 배우자가 옆에서 지혜롭게 도와주지 않으면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또 부부 싸움 끝에 "이혼해!", "그래, 이혼해!"하고 으름장을 놓은 뒤 각방을 써온 부부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갖고 간에는 평소 친밀감을 돈독하게 쌓아두어야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평소 작은 일에라도 긍정적인 감정과 우호적인 관계를 조금씩 저금해두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빼먹어도 여전히 두둑한 잔고가 남는 법이다.
* 출처 : 강학중 박사의 가족수업 (강학중 지음 / 김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