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성이 좋고 배려심도 깊은 윤호는 상담을 하는 중에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엄마는 자꾸 저한테 외국으로 유학을 가서 의사가 되라고 하세요. 전 정말 싫어요. 친구들이랑 헤어지는 것도 싫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엇어요. 사실 전 의대에 갈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해요. 유학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자신이 없는데 자꾸만 유학을 가라고 하시니까 엄마가 얘기 좀 하자고 하면 짜증부터 나요."
개인적인 학습 역량과 적성, 흥미 등을 고려해볼 때 윤호에게는 유학생활과 의사라는 직업 모두가 적절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도 엄마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나머지 윤호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다. 더 큰 문제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사람이 윤호 혼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윤호가 왜 이렇게 삐딱해졌는지 모르겠어요. 그게 다 저 잘되라고 하는 소린데도 그걸 모른다니까요. 요새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어디 있어요? 자기는 그냥 명문대로 유학 가서 공부만 잘하면 되는데, 그 얘기를 하려고만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짜증부터 내니 원..."
위의 사례에서 문제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은 윤호의 엄마지만 문제의 해결책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전체에서 찾아야 한다. 엄마와 윤호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의사소통의 매개자가 없고 오해와 불신을 해결한 중재자가 없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이다. 따라서 엄마와 윤호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역할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아빠다. 아빠는 이 문제를 수수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엄마의 기대치를 아이의 역량에 맞게 조절하도록 도와줌으로써 더 이상 아이를 닦달하고 몰아붙이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
가족은 엄마와 아이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빠의 노력이 있어야 유지될 수 있는 결합체이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들 사이에서 아빠는 그들을 이어주는 특별한 다리가 될 수 있다. 아빠라는 존재는 엄마와는 '부모'라는 이름으로, 아들과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교집합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명하고 인자한 엄마라 할지라도 아들과 공유할 수 없는 영역이 있기 마련이다.
아빠는 그 영역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모자간의 거리를 좁혀주어야 한다.
아빠와 아들이 공유하고 있는 영역이란 기본적으로 남성의 육체와 그 안에서 생성되는 남성 호르몬에 의해 조성된다. 사춘기의 신체적 변화와 그로 인해 빚3어지는 고민을 아들이 엄마에게 털어놓기는 쉽지 않다. 엄마가 여성으로서 경험한 2차 성징은 남성인 아들이 경험한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행동과 사고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령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와 다투고 코피라도 흘렸다면 엄마는 기겁을 하며 아이를 혼내기 마련이다. 여자들은 어려서나 나이가 들어서나 몸으로 부대껴 싸우는 일이 별로 없기 대문에 엄마가 되어서도 아이들의 육체적 싸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혹여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나, 친구와 사이가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는 아이가 친구와 몸싸움을 하고서도 다시 그 친구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잘 지낼 것을 알기에 크게 나무라지 않는다. 그러니 친구와 다툰 아이가 사소한 고민을 털어놓고 싶은 쪽은 자연스레 아빠가 되고 만다.
아빠와 딸의 관계에서 엄마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부녀간의 갈들이 생겼을 때 이를 해소시켜주는 것은 엄마의 몫이다. 엄마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빠와, 여자의 입장에서는 딸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들 사이에서 엄마는 대화와 화해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출처 : 너무 늦기 전에 자녀와 화해하고 싶은 부모를 위한 자녀심리학(와이즈멘토 지음/리더스북)